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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컨셉의 오류?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

by 맛의 마술사 하이디 2024.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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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까르띠에 전시를 본 적이 있다.  그 때, 귀금속 공예가 예술로 나에게 다가왔던 것이 인상적이어서 KT 할인을 받아 (30%) 예매를 했다.  예매는 날짜와 시간을 지정해야 했다.  한 번에 많은 관람객이 몰릴까봐 그런 것은 이해한다.

전시 장소는 DDP (동대문디자인프라자) 아트홀로 되어 있는데, 정확한 건물명이 나와있지 않았다.  카카오맵에도 표시되지 않았다. 

DDP 패션몰에는 아트홀이 없다.  한참을 주변을 헤매다가, 카페드페소니아 내부의 안내 데스크에서 겨우 안내를 받아 입구를 찾았다.  전시를 개최하는 입장에서 찾아오는 손님을 생각해서 좀 더 안내 표지 등에 신경을 써 주었으면 한다.

드뎌 여기, 그런데 백팩은 라커에 맡겨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손가방은 들고 들어갈 수 있는데, 백팩은 안된다...

그것도 이해할 수 있다.  미술관 들어갈 때 가방 안에까지 들여다보고 검색을 당하는 일도 있었기에... (검색 당하는 건 좀 안좋지만, 총기나 위험물은 반입 안된다는 안전성은 보장되므로)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니다.  수십개(혹은 백여개)의 라커를 디지털로 컨트롤하는 키가 딱 하나 뿐이어서, 10명만 짐을 맡기려 해도 9명을 기다려야 한다.  그냥 라커마다 키가 꽂혀 있는 게 훨씬 좋겠다.  

어쨌든 기대했던 전시를 보기 전에 기분 나빠지지 않으려고, 겨우 웃으며 짐을 맡기고 티켓 수령 후 입장한다.

입장할 때 티켓만 있으면 들어가는 게 아니다.  무전기를 귀에 꼽은 검은 옷의 사람이 무전기 저쪽에 확인을 한 후에 몇 명씩 들여보내준다.   

내부는 보석과 시계 등 전시품을 돋보이게 하려고 어둡게 해 놓았다.  작품이 있는 곳에만 조명이 있다.

방마다 섹션의 테마가 있는 것 까지는 좋았다.

처음 마주하는 작품은 시계였다.  시계를 감상하기 전에 앞에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몇분 동안 봐야만 했다.

그래야 다음 것을 보러 갈 수가 있는... 세상에.

챕터가 진행되면서 전시장을 이동할 때 또 검은 문과 검은 옷의 사람에게 제지 당하고, 몇 초 내지 1분 정도를 기다렸다가 다음 문을 지나가야 한다.  앞의 문으로도 맘대로 진행 못하고 뒤의 문은 닫혀 있다.

미술 전시는 미술에 몰입하는 재미이고, 보석 전시는 보석에 몰입하는 재미 아닐까?

앞 뒤로 검은 문에 막혀서 또 이렇게 줄을 서서 하나씩 작품을 봐야 한다.  짜증~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작품 자체가 주는 창의성과 자유를 느끼기보다, 기다리는 막막함이 더 어둡다.

이제껏 이런 전시는 본 적이 없다.

까르띠에의 작품들이 고가인 것을 알기에 이해해 주고 싶다. 하지만, 내가 이제껏 보았던 미술품들 중에는 가격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값진 것들도 많았으나, 이렇게 관람객을 가두어 둔 일은 없었다. 

저 보석을 보고 있는 나도 이 전시의 일부인 것을 주최측은 인정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마치, 전시된 물품들은 너무 소중한 반면, 관람객이라고 들어오는 자들은 (비록 티켓을 샀어도) 예비 절도범으로 취급되는 것 같았다.  작품에 대한 지나친 보안과 자유롭지 못한 관람 분위기가 그러한 불쾌감을 준다.

작품들은 창의성과 자유를 말하고 있건만...

전시가 소중한 만큼, 그것을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 관객들이 소중하다는 것과, 작품을 만들고 전시회를 기획한 주체가 많은 스토리를 가진 것 만큼 관객들 개인의 많은 스토리 안에 이 전시가 들어와서 무언가 함께 이루어낸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로 그 컨셉트를 놓친 것이라면, 제아무리 까르띠에가 훌륭한 회사라 해도 이번 만큼은 오류인 것이다. 

아름다운 작품들과 훌륭한 역사적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음에도, 이렇게 답답한 마음으로 눈팅을 하고 나오게 된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 전시였다.

보석 뿐 아니라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다양한 소재의 오브제들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관객과 함께 호흡한다는 의식이 결여되었다는 점에서 너무도 서운한 전시였다.

아카이브, 까르띠에의 기록들도 분명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더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0여년 전 보았던 전시의 인상이 아직도 남아있는 엽서가 기억나서 오늘도 기념품으로 엽서를 한 장 샀다.

이것은 하이디가 아직 소장하고 있는 10여년 전 전시의 기념엽서

전시품의 사진을 테마로 만든 수첩, 마그넷 등도 있었고 도록도 예쁘게 제작했던데, 이번 전시는 그닥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 같지 않다.

 

(이상은 내돈내산, 전시관람 후 느낌과 생각을 적은 개인적인 의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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